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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국제통상] 사상 최초의 투기 거품, '네덜란드 툴립 파동'

채지평 2023-03-30 00:00:00

튤립 파동은 역사상 최초의 투기 대란으로 여겨진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튤립 파동은 역사상 최초의 투기 대란으로 여겨진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17세기에 네덜란드는 경제적 번영과 예술적 발전이 어우러진 황금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또한 "툴립 광풍"으로 알려진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경제 사건 중 하나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튤립은 16세기 후반에 네덜란드에 처음 도착했고 활기찬 색깔과 독특한 외모로 인해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튤립이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유례없는 투기 거품의 중심지가 된 것도 그 점 때문이었다. 이 꽃은 순식간에 네덜란드 엘리트들의 지위 상징이 되었고, 부유한 상인들은 앞 다퉈 이국적인 튤립 구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튤립 구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도 급등했다. 1634년과 1637년 사이에 네덜란드의 튤립 거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전구는 터무니없는 액수의 돈으로 교환되었다. 가격 상승세는 엄청나서, 하루에 두세 배씩 오를 때가 있을 정도였다.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때, 튤립 구근 하나는 호화로운 집이나 숙련된 장인의 평생 수입만큼의 가치를 보였다. 

일례로 가장 비싼 구근 중 하나인 셈퍼 아우구스투스는 구근 한 개에 무려 2500 길더였다. 이것은 고급 저택 한 채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처럼 튤립 거래는 매우 수익성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미래의 튤립 구근 배달을 위한 계약을 사고 팔 수 있는 최초의 공식적인 선물 시장의 창조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광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뿌리의 가격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자 전체적인 튤립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튤립 구근을 둘러싼 투기 광풍은 결국 지속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1637년 2월, 시장이 갑자기 붕괴되어 많은 투자자들이 파산했다. 가격은 폭락했고, 한때는 큰 가치가 있었던 튤립 구근은 하루아침에 사실상 가치가 없어졌다. 결국 튤립 구근은 4개월 만에 최고점에서 95%가 떨어지고 말았다. 투자자들에게는 투자금의 5% 남짓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는 세계 대공황 당시 주가가 75% 하락한 것보다도 더 큰 하락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네덜란드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1636년을 기점으로 기 이전 튤립 구근과 관련된 모든 계약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또한 그 이후 맺어진 계약에 대해서는 계약 금액의 10%를 물어주도록 했다. 

광풍은 사라졌지만, 후유증은 길게 남았다. 튤립 파동이 네덜란드 경제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서, 네덜란드가 영국과의 영란전쟁에서 패한 것도 이 튤립 파동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튤립 마니아는 투기 거품의 초기 사례로 작용하며 현대 투자자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튤립 시장의 급속한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붕괴는 투기의 위험과 시장 안정성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튤립 마니아는 변동성이 크고 빠르게 팽창하는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경고성 이야기로 인용되어 투기 행위의 잠재적 위험과 결과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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