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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국제통상] 미국 최초의 금융위기 ‘1792년 공황’

채지평 2023-04-03 00:00:00

1792년 공황(Panic of 1792)은 미국 최초의 금융위기로 평가받는다. 인베스터암네시아
1792년 공황(Panic of 1792)은 미국 최초의 금융위기로 평가받는다. 인베스터암네시아

1792년 공황은 미국이 겪은 최초의 금융위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공황은 연방은행 설립과 관련한 과도한 투자와 대출로 인해 발생했는데, 효과적인 금융규제와 적절한 공적자금 투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교훈을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92년 공황은 초기 미국을 휩쓴 짧지만 중대한 금융위기였다. 그것은 젊은 국가 경제의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궁극적으로 더 강력한 금융 규제의 확립으로 이끌면서, 대규모 금융공황으로 번지며 미국의 첫 번째 경제적 공황을 기록했다.


투기와 위험성

당시 미국은 아직 독립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인베스터암네시아
당시 미국은 아직 독립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인베스터암네시아

1790년대 초, 미국은 여전히 미국 독립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에서 회복하고 있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제일은행의 설립과 연방정부의 국채 인수를 포함한 국가 경제의 안정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특히 정부 증권과 미국 은행의 주식에 대한 투기의 급증을 촉발시켰다.

1792년 공황은 윌리엄 듀어와 알렉산더 매컴이라는 두 명의 저명한 금융가들의 투기 활동에 의해 촉발되었다.

듀어와 마콤은 일련의 고위험 투자와 투기 계획에 관여했으며,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많은 양의 정부 증권을 사고팔기 위해 빌린 돈을 사용했다. 그들의 공격적인 전략은 유가의 급격한 상승을 이끌었고, 다른 투자자들이 그 뒤를 따르도록 유혹했다.

그러나 듀어와 메이컴의 투기적 모험이 풀리면서 거품은 곧 꺼졌다. 그들의 재정적 의무를 이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채권자들과 다른 투자자들 사이에 공황을 촉발시켰다. 공황은 빠르게 확산되어 증권 가격의 급격한 하락과 신용 경색으로 이어져 전체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공적자금과 시장의 안정

[역사속 국제통상] 미국 최초의 금융위기 ‘1792년 공황’
1792년 공황은 정부의 시기적절한 시장 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해주는 사건이 됐다. 월스트리트 전경

위기에 대응하여 알렉산더 해밀턴은 신속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는 미국 제일은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 정부 증권을 매입함으로써 시장에 유동성을 주입했다.

또한 다른 은행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신용을 제공하도록 설득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시장을 안정시키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792년 공황은 미국에 지속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미국의 국가의 금융시장과 기관에 대한 더 큰 규제와 감독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

그 후 몇 년 동안 연방정부는 국가의 금융 인프라를 강화는데 집중했다. 미국은 뉴욕 증권거래소의 설립과 함께 더 엄격한 은행규제의 도입을 포함한 미래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1792년 공황은 특히 급속한 성장과 투기의 시기에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위기는 경제의 안정과 개인 투자자들의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하고 효과적인 금융규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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