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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무역 FOCUS] WTO 사무총장 “세계무역 규칙, 80년 만의 최대 위기”

이찬건 2025-09-03 13:15:07

최혜국대우 약화, WTO 체제 흔들리다
관세 충격, 2026년부터 본격화 우려
미국 분담금 삭감…재정 압박 가중
개혁과 새 합의로 돌파구 모색
[기획-무역 FOCUS] WTO 사무총장 “세계무역 규칙, 80년 만의 최대 위기”
HMM

세계무역기구(WTO)의 누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국제 무역 질서의 혼란을 맞고 있다며 경고음을 울렸다. 그는 취임 2기를 시작하며 제네바 본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글로벌 무역 규칙이 흔들리면서 WTO 체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MFN 비중 80%→72%로 추락

WTO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교역에서 최혜국대우(MFN·Most Favoured Nation) 조건이 적용되는 비중은 불과 몇 년 전 약 80%에서 현재 72%까지 떨어졌다.

MFN 원칙은 모든 회원국이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자유무역의 핵심 규범이다. 그러나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부분의 교역 상대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 원칙이 약화됐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무역의 다수가 여전히 MFN 조건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50%선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가 지정학적·전략적 수단으로 쓰이는 상황에서 WTO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기획-무역 FOCUS] WTO 사무총장 “세계무역 규칙, 80년 만의 최대 위기”
WTO 글로벌 무역 성장률 전망(%)

단기 반짝 성장, 2026년 이후가 고비

그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교역이 재고 확보 차원의 ‘선적 앞당기기(front loading)’로 증가세를 보였지만, 내년부터는 효과가 사라져 관세 여파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WTO는 지난 8월 올해 세계 교역 증가율 전망치를 0.2%에서 0.9%로 상향 조정했지만, 내년 이후 성장세는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창고의 물량이 소진되면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일부 성장세는 유지되겠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무역 FOCUS] WTO 사무총장 “세계무역 규칙, 80년 만의 최대 위기”
WTO MFN 조건에 따른 세계 무역 비중(%)

미국 분담금 삭감 우려

미국 정부가 WTO 예산 지원을 삭감하려는 움직임도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WTO를 포함한 국제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으며, 여기에는 약 2,900만 달러(약 3,730억 원) 규모의 WTO 분담금 삭감이 포함돼 있다.

WTO의 2024년 연간 예산은 2억500만 스위스프랑(약 3억2,800만 달러)이며, 미국이 이 가운데 약 11%를 부담하는 구조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아직 최종 통보는 받지 못했지만 우려스럽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획-무역 FOCUS] WTO 사무총장 “세계무역 규칙, 80년 만의 최대 위기”
HMM

개혁과 새로운 합의

WTO 개혁은 그의 핵심 과제다. 특히 중국이 산업정책 논의에 전향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돌파구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7월 회원국들이 제출한 개혁안에는 의사결정 절차 단순화, 보조금 문제 등 산업정책의 공정성 제고 방안이 담겼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수년간 마비됐던 협상이 이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영국, 호주, 아랍에미리트 등 일부 국가들이 현실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2017년 이후 첫 글로벌 합의가 곧 발효될 것이라고 전했다. 2022년 타결된 수산 보조금 감축 협정은 회원국 3곳의 추가 비준만 남아 있으며, 몇 주 안에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WTO의 역할 축소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개혁 움직임과 신규 합의는 여전히 제도적 복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비관과 두려움은 끝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향한 낙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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