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하프늄 수출 통제 강화와 인공지능(AI) 붐으로 인한 반도체·가스터빈 산업의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유럽에서 하프늄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우주와 원자력, 컴퓨팅 등 전략 산업에 필수적인 이 희귀 금속은 최근 1kg당 7,000달러에 육박하며 국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금속·원자재 전문 정보업체 아거스(Argus)에 따르면 최근 로테르담 현물 시장에서 하프늄 가격은 1kg당 6,300~7,000달러 사이로 형성돼, 2023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7,100달러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거래 현장에서는 7,000달러를 넘긴 사례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하프늄은 지르코늄의 정련 과정에서 부산물 형태로 소량 추출되는 금속으로, 일반적으로 ‘하프늄 1에 지르코늄 50’의 비율로 생산된다. 이런 물리적 특성 탓에 고순도의 하프늄을 분리하고 정제하는 과정은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 효율도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생산량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최근 중국의 수출 제한까지 겹치면서 공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2024년 보고서를 통해 중국, 독일, 네덜란드를 미가공 하프늄의 주요 수출국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 중 중국은 지난 1월부터 개정된 수출 통제 규정에 따라 하프늄을 이중용도(dual-use) 품목으로 분류하고, 해외 반출 시 엄격한 정부 허가를 의무화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규제 변화가 공급 불안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유럽의 한 소규모 금속 거래업자는 “최근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중국의 수출 통제가 실질적으로 강화됐다”며 “정부 승인을 받아 실제 수출을 할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중용도 품목을 과거에 다룬 이력이 없거나 수출 허가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업체들은 이제 아예 수출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국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월 5,001kg에 달하던 중국의 미가공 하프늄 수출량은 9월에는 499kg으로 급감했다. 9개월 만에 수출량이 90% 이상 줄어든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하프늄을 전략 금속으로 분류하고 외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수요 측면에서도 하프늄 가격 상승 요인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거스에서 하프늄 가격을 추적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벨다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및 메모리 기술 분야에서 하프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AI 데이터 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가스터빈 수요가 늘면서 하프늄 금속에 대한 수요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프늄은 열에 강한 초합금 제조에 활용되며, 가스터빈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AI 데이터 센터는 고성능 연산을 위한 고열 환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내열성이 뛰어난 가스터빈이 필수이며, 이 과정에서 하프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산화하프늄(HfO₂)은 고유전 특성을 활용해 메모리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는 소재로, 데이터 저장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세공정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하프늄 기반의 소재를 적극 채택하고 있는 추세다.
이 밖에도 하프늄은 부식에 강한 성질 덕분에 원자력 발전소의 제어봉에도 쓰인다. 원자로 내에서 중성자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어 핵연료의 반응을 제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시장 관계자들은 미국 내에서도 하프늄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 거래소 소식통은 “미국 시장에서는 공급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거래가 1kg당 7,000달러 이상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프늄 시장은 일반적인 산업용 금속과는 달리 소수의 정제업체와 거래자들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가격 변동성이 크고 투명성이 낮은 특성을 보인다. 현재의 가격 급등은 단기적 공급 부족에 기인한 측면도 있으나,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유럽계 소재 업체 관계자는 “하프늄 수요는 단순한 산업 성장과 맞물린 것이 아니라, AI·클라우드·원자력 등 향후 수십 년간 핵심 산업 전반에 걸쳐 기반이 되는 금속”이라며 “단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프늄의 이러한 전략적 가치와 공급 불안정은 각국 정부와 산업계가 희귀 금속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확산과 함께 하드웨어 수요가 폭증하면서 하프늄 수급의 안정성이 글로벌 기술 산업의 기반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수출 규제에 AI 수요까지 겹쳐…유럽 하프늄 가격, 사상 최고치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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