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배터리 장비와 관련 부품의 수출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인도의 대표적 대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Reliance Industries)가 현지에서 배터리 부품을 선조달하기 위한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릴라이언스는 중국이 오는 11월 8일부터 도입하는 새로운 수출 통제 제도에 앞서 배터리 관련 핵심 장비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일부 핵심 인력을 중국 현지로 파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치는 릴라이언스가 추진 중인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 특히 인도 정부의 탈탄소 정책에 발맞춘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지 팀이 하루 단위로 작업 일정을 압축하고 있다”며 “중국 측 공급업체와 협의해 모든 장비를 규제 시행 이전에 출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통상적인 생산 및 검수 절차를 생략하고, 출고와 선적을 먼저 진행한 후 도착지에서 품질 테스트를 하기로 합의한 사례도 다수 있다”고 전했다.
릴라이언스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중국 상무부 또한 관련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중국은 현재 배터리 생산 기술과 장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제조업체 상위 10곳 중 6곳이 중국 기업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수출 통제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은 이번 달 초, 고급 배터리 제조 장비를 포함한 일부 항목에 대해 수출 전에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새로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장비 및 부품은 베이징의 수출관리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국외 반출이 가능해진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릴라이언스뿐 아니라 최소 12곳 이상의 글로벌 배터리 고객사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부 고객사는 도색이 되지 않은 상태, 조립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제품이라도 무조건 먼저 받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나사 체결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장비들이 우선 배송되며, 이후 현지에서 재점검 및 보완을 하겠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규제 조치는 배터리뿐 아니라, 희토류, 반도체, 드론 등 다양한 전략 기술 분야로 확산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중국 의존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올해 4월, 특정 희토류 화합물의 수출을 통제하면서 전 세계 공급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당시 조치는 세계 자동차, 항공, 전자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을 야기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대체 공급처를 찾아야만 했다.
이번 배터리 장비 수출 제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으며, 특히 배터리 셀 생산라인, 전극 제작 장비, 분리막 관련 기술 등 주요 공정에 필수적인 설비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 가운데 하나인 CATL은 로이터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새 수출 규정이 시행되더라도 해외 공장으로의 장비 수출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며 “유럽 거점 공장에 필요한 자재는 현재 정상 출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부 공급업체는 최근 고객사들에게 수출 허가 지연 가능성을 사전 고지하고 있으며, 공급 시점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신규 주문 수량을 제한하거나 계약 조건을 변경하고 있다는 후속 보도도 나왔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중국의 배터리 수출 규모는 4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6% 증가한 수치로, 중국이 여전히 세계 배터리 시장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릴라이언스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구축은 인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그린 에너지’ 프로젝트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릴라이언스는 현재 인도 전역에 걸쳐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배터리 저장 시스템(BESS)을 핵심 인프라로 채택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릴라이언스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조립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인도 내에서 마련하려면 최소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가동 예정인 발전소에 적용할 장비 대부분은 중국산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의 수출 규제는 단순한 부품 조달의 문제를 넘어, 인도의 에너지 전략 전반에 걸친 일정 재조정 가능성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익명의 소식통은 “현재 릴라이언스뿐만 아니라 유럽, 동남아, 북미의 주요 기업들이 중국 공급업체와의 계약 조건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측은 수출 허가가 새로운 정부 체제 하에서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고객사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구체적인 절차나 일정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기업들로서는 허가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장비와 부품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릴라이언스는 현재 모든 화물의 선적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항공 운송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기존 해상 운송 대비 비용이 높더라도 납기 지연을 피하기 위한 긴급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중국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얼마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산업 전략과 무역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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