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유럽연합(EU)이 장기간 지연됐던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하며 통상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관세 리스크와 북미 자유무역 체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멕시코는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EU는 중남미 시장과 공급망 접점을 넓히려는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멕시코와 EU는 지난 5월 22일 멕시코시티에서 현대화된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이번 협정은 2000년 발효된 기존 멕시코-EU 협정을 개정한 것으로, 상품무역뿐 아니라 서비스, 디지털 무역, 정부조달, 투자, 농산물 시장 접근 등을 포함한다. 서명식에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참석했다.
이번 협정은 양측 모두에 통상 전략상 의미가 크다. 멕시코는 수출의 약 80%를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다. 북미 제조업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돼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미국의 관세 압박이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재검토 국면에서는 취약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USMCA를 갱신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하며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통상 압박을 높이고 있다.
멕시코가 EU와의 협정을 서둘러 마무리한 배경에는 이러한 대미 의존 구조를 완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이번 협정을 통해 EU 수출을 현재 약 240억 달러 수준에서 2030년 360억 달러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약품, 농업, 기술개발, 전기 모빌리티 등 분야에서 새로운 교역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제기된다.
EU 입장에서도 멕시코는 전략적 가치가 크다. 멕시코는 북미 제조업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면서 동시에 중남미 시장으로 연결되는 교두보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예측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EU는 멕시코와의 협정을 통해 수출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다. 운송장비, 기계류, 화학제품, 연료, 농산물 등 기존 교역 품목뿐 아니라 디지털 무역과 투자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는 것이 이번 협정의 특징이다.
다만 협정 발효까지는 추가 절차가 남아 있다. EU와 멕시코는 현대화된 글로벌 협정과 임시 무역협정에 서명했으며, 향후 각자의 내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EU 측은 이번 협정이 기존 양자 관계를 21세기 통상 환경에 맞게 개편하고, 지속가능발전과 부패 방지 관련 약속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서명은 중남미 통상 질서에도 시사점을 준다. 미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멕시코의 성장 동력이자 동시에 리스크였다. EU와의 협정은 멕시코가 북미 공급망을 유지하면서도 유럽 시장과 제도적 연결을 강화하는 통상 다변화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남미 통상 전문가인 마르셀루 아라우주 상파울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멕시코-EU 협정은 단순한 FTA 서명이 아니라 미국 중심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낮추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며 “USMCA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멕시코는 유럽·아시아 등으로 시장과 투자 파트너를 넓히려는 움직임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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