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해상 물동량 증가가 맞물리면서 동남아 항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그동안 동남아 해운망은 싱가포르항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지만, 최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대규모 항만 확장에 나서면서 역내 물류 지형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압도적인 해운 허브다. 싱가포르 해사항만청에 따르면 2025년 싱가포르항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4,466만TEU로 전년보다 8.6% 증가했다. 선박 입항 규모와 벙커링, 해운금융, 선박관리, 해사 서비스까지 결합한 종합 항만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역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2040년대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투아스항은 연간 6,500만TEU 처리 능력을 갖춘 초대형 자동화 항만으로 조성되고 있다.
다만 동남아 제조업 물동량이 빠르게 늘면서 싱가포르 집중 구조를 분산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포트클랑과 탄중펠레파스를 중심으로 싱가포르의 환적 물량 일부를 흡수하려 하고 있다. 특히 포트클랑 웨스트포트는 CT10~CT17 터미널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웨스트포트2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처리 능력은 현재 1,400만TEU 수준에서 2,700만~2,800만TEU 안팎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말라카해협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 구조는 말레이시아 항만의 주요 경쟁력으로 꼽힌다.
베트남은 환적보다는 실제 수출 물동량을 기반으로 항만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남부 까이멥-티바이 항만은 대형 컨테이너선 입항이 가능한 심해항으로, 미국·유럽 직항 확대의 기반이 되고 있다. 북부 락후옌항 역시 하이퐁과 베트남 북부 제조벨트를 연결하는 핵심 물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제품, 섬유, 신발, 가구 등 베트남의 주력 수출 품목이 늘면서 항만 확장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동남아 항만 경쟁이 단순한 시설 확장을 넘어 통상 경쟁력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항만 처리 능력, 통관 속도, 내륙 물류망, 선사 기항 빈도는 수출기업의 납기와 비용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특히 미중 갈등 이후 생산기지가 동남아로 분산되면서 항만 인프라는 투자 유치와 공급망 안정성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다만 싱가포르의 독주가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물동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싱가포르가 보유한 해운 서비스 생태계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동남아 해운망은 싱가포르 단일 중심 구조에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보완축으로 참여하는 다핵형 항만 체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동남아지역 통상 전문가들은 동남아 항만 경쟁이 한국 기업의 물류 전략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아세안통상연구센터 아룬 프라셋요 선임연구원은 “동남아 생산기지를 활용하는 기업들은 싱가포르 환적 의존도를 낮추고 포트클랑, 까이멥, 락후옌 등 대체 항만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며 “항만 선택이 운임과 납기, 통관 리스크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층-LDC 블록]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수출국, AGOA 1년 연장에도 불안 여전
동남아 항만 경쟁 가열…싱가포르 독주 속 말레이시아·베트남 추격
[기획-무역 FOCUS] 튀르키예 5월 무역적자 15.7% 감소…9개월 만에 최저
[심층-LDC 블록] 방글라 수출, 4월 반등 뒤 다시 감소…의류 부진에 성장 회복 ‘빨간불’
[심층-ASEAN 트레이드] 캄보디아-태국 국경분쟁 여파에 교역 급감…1~4월 무역액 38% 감소
[기획-무역 FOCUS] 모로코 무역적자 18% 급증… 자동차 수출 호조에도 수입 증가세 못 따라가
[기획-ASEAN 트레이드] 필리핀 수출 16개월 연속 증가…전자제품·대미 수출이 성장 견인
[기획-무역 FOCUS] 미·인도 무역협상 재개…‘10% 보편관세’ 변수에 셈법 복잡
[심층-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이란 전쟁에 흔들리는 걸프 오일머니…국부펀드 투자전략 재검토
[기획-무역 FOCUS] 아세안, 11월 전 석유공유협정 비준 추진…중동발 에너지 충격 대응 속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