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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무역 FOCUS] 데이터 개방 vs 디지털 주권… 통상 전선으로 번진 충돌

박문선 2026-03-03 05:53:25

[기획-무역 FOCUS] 데이터 개방 vs 디지털 주권… 통상 전선으로 번진 충돌
 

디지털 과세를 둘러싼 갈등이 글로벌 통상 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이 각국의 데이터 주권 규제에 대한 외교적 대응에 나서고, 주요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디지털 무역 조항이 강화되면서 통상 질서의 중심축이 빠르게 ‘디지털’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관세와 상품 무역 중심이던 기존 전선은 데이터 이동, 플랫폼 과세, AI 서비스 규제로 확장되며 각국 간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자국 외교관들에게 데이터 현지화 정책에 적극 반대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데이터 국경화 조치가 클라우드·AI 산업의 확장을 저해하고 기업 비용을 증가시키며 글로벌 디지털 공급망을 단절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버의 자국 내 설치 의무화나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제한에 대해서는 통상 채널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기술 규제 차원을 넘어,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을 방어하고 데이터 자유 이동 원칙을 국제 규범으로 굳히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FTA, ‘자유 이동’과 ‘국가 통제’ 사이 균형 모색

이 같은 기조는 디지털 서비스세(DST)를 둘러싼 마찰과도 맞물린다. 일부 국가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를 추진하자 미국은 이를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디지털 과세는 조세 주권의 영역이지만, 플랫폼 기업이 집중된 국가와 소비 시장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는 통상 이슈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차별적 과세가 확대될 경우 통상 보복이나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는 2019년부터 자국 내 매출이 일정 기준을 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3%의 디지털 서비스세(DST)를 부과해 왔다. 과세 대상에는 구글·아마존·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다수 포함되면서 미국 정부는 이를 자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간주했다.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하고 보복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OECD 차원의 글로벌 최저한세 합의 논의가 진행되면서 양측은 일시적으로 충돌을 완화했지만, 디지털 과세를 둘러싼 통상 마찰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기획-무역 FOCUS] 데이터 개방 vs 디지털 주권… 통상 전선으로 번진 충돌
글로벌 디지털 무역 통계 WTO

이러한 갈등은 FTA 협상 구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디지털 통상 갈등은 최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구조에도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인 USMCA에는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을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서버 현지화 요구를 금지하며, 소스코드 공개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또 싱가포르·칠레·뉴질랜드가 체결한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역시 전자문서 인정, 전자결제 협력,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이동 간 균형 등을 규범화하며 디지털 무역을 별도 장(章)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FTA 협정문에는 국경 간 데이터 이동 보장, 전자문서·전자서명 인정, 소스코드 공개 요구 제한 등 디지털 무역 조항이 핵심 쟁점으로 포함되는 추세다. 상품 관세 인하를 넘어 데이터와 플랫폼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협상 목표로 자리 잡으면서, 디지털 통상 규범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통상 규범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향후 글로벌 경제 질서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누팜 섄더 조지타운대 교수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은 현대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와도 같다”면서도 “동시에 각국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안보, 산업 전략을 이유로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디지털 통상의 핵심 갈등은 ‘개방’과 ‘주권’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며, 이 충돌이 향후 FTA와 WTO 논의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무역 FOCUS] 데이터 개방 vs 디지털 주권… 통상 전선으로 번진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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