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추가 관세 부과를 연기하면서 일시적 ‘무역 휴전’이 성립했지만, 이 변화의 파장은 단순한 양국 무역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에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산 LNG의 관세·정치 리스크를 우려한 중국이 중동으로 눈을 돌리면서,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는 생산 확대와 장기 공급 계약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장기 계약·스팟 조달 능력·저장시설 확충·에너지 외교·가격 안정 전략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90일의 숨 고르기는 곧, 준비 없는 국가에는 위기라는 경고장이 될 수 있다.
중동은 기회를, 한국은 고민을
카타르는 ‘노스 필드 이스트(North Field East)’와 ‘노스 필드 사우스(North Field South)’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까지 LNG 생산능력을 연간 1억1천만 톤, 2028년에는 1억2천6백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중국 CNPC와 Sinopec과 각각 27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향후 2~3세대에 걸친 안정적 수출 기반을 확보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국영기업 ADNOC를 통해 중국 CNOOC와 2026년부터 5년간 연간 50만 톤 LNG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동아시아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린 추가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상업적 거래가 아니다. 미국산 LNG에 부과될 수 있는 관세와 정치적 리스크를 사전에 회피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며, 중동 수출국들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전제 속에서, 중국은 ‘공급 다변화’를 포기할 수 없고, 중동은 그 수혜를 최대화하기 위해 생산·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전략, 방심할 때 아니다
한국은 LNG 수입 의존도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며, 그중 상당 부분을 중동과 미국에 의존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공급망이 지정학적 변화에 따라 재편되는 시기에는 단순한 구매 다변화 이상의 전략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네 가지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장기 계약 확대와 함께 단기 시장(Spot Market) 조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장기 계약은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기상이변이나 산업 수요 급증 같은 돌발 상황에는 스팟 거래 역량이 필수적이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전용 선박과 전담 조직을 갖추고 있다.
둘째, 재기화 터미널과 저장시설 확충을 통한 ‘물리적 버퍼’ 확보다. 터미널 용량이 충분해야 단기 물량 증가를 소화할 수 있고, 저장능력은 계절별 가격 차이를 활용한 전략 비축의 기반이 된다. 한국의 저장능력은 약 20일분으로 일본(30~40일분)에 비해 낮다.
셋째, 중동, 호주, 아프리카 등 신규 공급국과의 에너지 협력 외교 강화가 필요하다. 모잠비크·나이지리아 같은 신흥 공급국과 장기 MOU·합작 터미널 개발·우선 구매권 계약을 체결하면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넷째, 가격 변동성 완화를 위한 선물·파생상품 활용 전략 고도화다. LNG 가격은 국제유가·허브가격·환율 등 복합 변수로 크게 출렁인다. 선물·옵션·스왑을 활용하면 가격을 고정하거나 급등 시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 일본은 이를 상시 운영해 혹한기 가격 급등에도 평균 구매단가를 안정시킨다.
관세 유예는 기회이자 경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90일짜리 ‘숨 고르기’에 불과하다. 관세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고, 무역·에너지 공급망의 정치화는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중동 LNG 수출국들이 보여주는 빠른 의사결정과 대규모 장기 투자 계획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속도”**가 곧 국가 경쟁력임을 상기시킨다.
한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대비다. 90일 후 관세 국면이 어떻게 변하든, 그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에너지 안보와 무역 전략을 갖춰야 한다.
[기획] 트럼프 관세 유예, 중동 LNG 수출국은 질주… 한국, 대응 시계 빨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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