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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오버뷰]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글로벌 공급망 균열 보여줘

이찬건 2025-09-12 20:01:57

미국 이민법의 낡은 틀, 8천 명 투입 공정의 현실과 충돌
[트레이드 오버뷰]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글로벌 공급망 균열 보여줘

이번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추방 사태는 한국 기업에 뼈아픈 경고를 던지고 있다. 이에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지 말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힘을 얻는 모양새다. 

9월 4일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전격 단속을 벌였다. 이에 475명을 구금했는데, 이 가운데 한국 국적자는 300명 이상이었다. 일부는 팔과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 호송되었고, 이는 국내 언론과 여론에 큰 충격을 줬다.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전세기를 투입해 귀국 지원에 나섰지만,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인도적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에 숙련 기술자를 합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비자 제도 개혁 없이는 향후 미국 내 대규모 제조업 투자가 동일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법과 합법 사이에 갇힌 투자 프로젝트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한국 근로자 상당수는 관광·비즈니스 비자(B-1)나 ESTA로 입국한 뒤 현장에서 근무했다. 미 이민법상 이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그러나 공사 일정에 쫓긴 기업은 사실상 ‘편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건설 중인 이 합작 공장은 총 75억 달러 규모 투자 프로젝트로, 완공 후 연간 30만 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대 8천 명 이상의 근로자가 투입될 예정인데, 미국 현지 노동력만으로는 이를 단기간에 충당하기 어렵다. 그 결과 기업은 합법적 근로 비자가 아닌 단기 체류 신분으로 인력을 투입했고, 결국 대규모 단속이라는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트레이드 오버뷰]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글로벌 공급망 균열 보여줘

미국 이민법과 노동시장 현실의 괴리

문제의 뿌리는 미국 이민 제도의 구조적 경직성에 있다. 대표적인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는 매년 약 8만 5천 개로 발급이 제한돼 있으며, 대부분 IT·금융 등 고임금 전문직에 집중된다. 반면 대규모 건설·제조 현장에 필요한 숙련 인력을 충원할 만한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부재하다. H-2B 비자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는 계절성·저임금 노동자 중심이라 배터리 공장 같은 첨단 제조 현장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제도적 공백은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애리조나주에서 진행 중인 TSMC 반도체 공장 역시 비슷한 애로를 겪고 있다. 대규모 숙련 인력을 일본·대만에서 데려오려 했으나, 비자 승인 지연으로 일정 차질을 빚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겠다던 미국의 야심은 아이러니하게도 낡은 이민법 앞에서 걸려 넘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존 이민 제도 유연화 시급하다

첫째, 제도 개선 협상이 시급하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 채널에서 숙련 노동자 전용 비자 신설 혹은 기존 제도의 유연화 문제를 본격 제기해야 한다. 75억 달러라는 투자 규모는 단순히 민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외교의 자산이기도 하다.

둘째, 기업 내부의 준법 경영이 강화되어야 한다. 단기적 공정 압박에 밀려 비자 조건을 무시하는 관행은 결국 더 큰 비용과 리스크로 돌아온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공장 가동 시점은 최소 2~3개월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수억 달러 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트레이드 오버뷰]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글로벌 공급망 균열 보여줘

셋째, 투자 다변화 전략이 요구된다. 미국이 매력적인 시장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책 불확실성과 법적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유럽이나 동남아 등 대체 투자 거점을 병행 검토해야 한다. 최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전기차·배터리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제도 개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LG 공장 노동자 추방 사태는 단순한 불법 취업 단속 사건이 아니다. 이는 미국 내 대규모 제조업 투자가 현행 이민 제도의 낡은 틀 속에서 얼마나 불안정하게 굴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비자 제도 개혁 없이는 미국 내 투자 확대는 곧 리스크 확대일 뿐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한다면, 같은 위기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제는 발 빠른 제도 개선과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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