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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라크, EU 제재 여파로 인도 나야라 정유공장 원유 판매 중단

박문선 2025-09-03 17:35:46

-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트 지분 49% 보유, EU 제재 대상 포함
사우디·이라크, EU 제재 여파로 인도 나야라 정유공장 원유 판매 중단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Aramco)와 이라크 국영 석유 마케팅사 소모(SOMO)가 인도 서부 바디나르(Badinhar)에 위치한 나야라 에너지(Nayara Energy) 정유공장에 대한 원유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유럽연합(EU)이 발표한 18번째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와 직결된 것으로,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Rosneft)가 이 정유소의 최대 주주(49.13% 지분)라는 점이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재 직격탄 맞은 인도 정유공장

나야라 에너지는 인도 내 두 번째로 큰 정유공장으로, 하루 40만 배럴의 정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인도 전체 정유 용량의 약 8%를 차지한다. 그러나 EU 제재로 서방 기업 및 중동 산유국들과의 거래가 사실상 막히면서, 공장은 현재 70~80% 수준의 가동률에 머무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나야라가 이제는 사실상 러시아산 원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LSEG 데이터를 통해 현재 공장이 공동 소유주 로스네프트가 공급하는 원유만 처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유 수입 급감…운영 개시 이후 최저치

블룸버그에 따르면, 나야라 에너지의 9월 원유 수입량은 하루 9만 4천 배럴로 추산된다. 이는 작년 3분기 평균치였던 36만 6천 배럴/일에 비해 약 75% 감소한 수준으로, 공장 운영 개시 이후 최저치다.

수입 급감은 정유공장 운영뿐만 아니라, 인도의 전체 에너지 수급 안정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시장 집중…수출길은 사실상 차단

나야라 에너지는 전통적으로 국내 연료 공급을 최우선 순위로 삼아왔다. Oilprice가 8월 중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해당 정유소는 해외 수출을 제한적으로만 진행했으며, 주로 영국에 제트 연료를 판매해왔다. 영국은 EU 제재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수출이 가능했지만, EU의 광범위한 제재 조치 이후 상황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특히 이번 조치로 나야라는 사실상 국내 수요 충당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구조에 갇히게 됐다.

EU의 18번째 제재 패키지: 러시아 에너지 네트워크 차단 의도

EU는 지난달 발표한 제재 패키지에서 러시아 원유 거래업체, ‘섀도우 함대(Shadow Fleet)’를 운영하는 기업, 그리고 러시아 석유 산업의 핵심 고객사들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트의 지분이 걸려 있는 나야라 에너지 역시 포함됐다.

제재 조치는 △자산 동결 △여행 금지 △자원 공급 금지 등을 망라하며, 특히 러시아 에너지 산업과 긴밀히 연결된 기업들의 국제 거래를 전면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사우디·이라크의 입장과 국제적 파장

이번 사우디와 이라크의 판매 중단은 단순한 상업적 결정이 아니라 국제 정치적 압력과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국가는 EU 제재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나야라에 원유를 공급할 경우, 향후 유럽 시장 접근성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은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리스크 관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러시아와의 연결고리가 있는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리는 도미노 효과가 나타난다”며 “인도 같은 주요 수입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원유 수입을 다변화해 왔으나, EU 제재로 인해 나야라 에너지가 러시아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내몰린 것은 전략적 취약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 인도 정유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제 금융·거래 시스템에서 인도의 입지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다른 중동 공급자들과의 협력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나야라 사태가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유럽연합(EU) 제재가 글로벌 에너지 지형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한다. 

단기적으로 인도 내 연료 공급은 유지될 수 있지만, 수출 기반은 사실상 상실될 가능성이 크다. 중기적으로는 인도가 추진해온 에너지 수급 다변화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심화되는 한편 서방과의 마찰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EU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인도는 러시아 의존 심화와 서방과의 관계 약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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