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그림자(Shadow) 선박에 의존하는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국제 환경·에너지 연구기관(CREA)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 수출 물량의 약 42%가 그림자 선박을 통해 운송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과 1년 전 27% 수준에서 15%포인트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림자 선박은 선박 자동식별장치(AIS)를 차단하거나 국적 등록을 수시로 바꾸는 방식으로 추적을 피한다. 일부는 보험 가입이 불투명하거나 국제해사기구(IMO) 등록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국제 해운·보험 시장 전체가 불안정해진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가격 상한제 무력화
G7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에 배럴당 60달러의 가격 상한제를 설정하고 이를 위반한 거래에는 서방 보험과 선박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제재의 구멍은 커지고 있다. 7월 기준 러시아산 우랄(Urals) 원유는 두바이 기준가보다 배럴당 2~3달러 낮게 거래됐다. 인도 정유사들이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서는 이유다.
인도의 8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액은 29억 유로(약 34억 달러)에 달했다. 같은 달 중국의 수입액(31억 유로)에 근접한 규모다. Jamnagar 정유소를 운영하는 리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경우 조달 원유 절반가량을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외교 압박 커진다
인도는 하루 평균 약 5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세계 3위 소비국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산 비중은 2021년 3% 수준에서 현재 35~40%로 급등했다. 가격 메리트가 분명하지만 대가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이미 일부 인도산 수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라고 압박했고, 유럽도 “10월 이후 추가 조치” 가능성을 경고한 상태다.
그림자 선박 의존이 커질수록 리스크는 확대된다. 제재 대상이 된 선박이나 보험사와 연계될 경우 인도 정유사들이 직접적인 제재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가격 절감 효과가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외교 리스크가 더 크게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흔들거리는 국제 해운 질서
서방 보험사와 선급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중국·UAE·터키 기반 보험·운송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국제 규제 사각지대가 커지면서 사고 발생 시 피해 보상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IMO는 그림자 선박이 관여한 해상 사고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실질적 감독 권한은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선택이 글로벌 에너지 질서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러시아산 원유가 제공하는 할인 효과와, 그림자 선박을 통한 회색 시장의 확대가 당분간은 인도에 ‘실리’를 안겨주겠지만, 외교적 압박과 금융 리스크라는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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