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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무역 FOCUS] WTO “이대로 가면 혼돈”…다자 무역체제 존립 경고

이찬건 2026-02-12 16:23:18

보호무역 확산과 분쟁 누적, WTO 경고 현실화되나
[기획-무역 FOCUS] WTO “이대로 가면 혼돈”…다자 무역체제 존립 경고
WTO 은고지 이웨일라 수장

글로벌 통상 질서를 떠받쳐 온 다자 무역체제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은고지 오콘조 이웨일라(Ngozi Okonjo-Iweala) 수장이 최근 회원국들을 향해 “현 체제가 붕괴할 경우 세계 무역은 혼돈에 빠질 수 있다”고 공개 경고하면서, 보호무역 확산과 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힘의 논리로 기우는 세계 교역…다자무역체제 존립 시험대

WTO는 1995년 출범 이후 관세 인하와 무역 분쟁 조정 기능을 통해 글로벌 교역의 안정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주요국들이 국가 안보와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고율 관세와 보조금 정책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다자 규범의 구속력은 현저히 약화됐다. 특히 분쟁해결기구 상소기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이후, 회원국 간 갈등은 양자 협상이나 보복 관세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 상소기구가 2019년 이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진 점은 다자 무역체제 약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꼽힌다. 상소기구 위원 선임이 중단되면서 분쟁 판정이 최종 확정되지 못하는 사례가 누적됐고, 그 결과 회원국들은 WTO 절차 대신 양자 협상이나 보복 관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규범 기반 무역질서의 집행력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획-무역 FOCUS] WTO “이대로 가면 혼돈”…다자 무역체제 존립 경고
출처: 자사 데이터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 고율 관세 조치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양국은 기존 관세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 핵심 광물, 첨단 기술 분야까지 규제 범위를 넓히며 통상 갈등을 전략 경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무역 분쟁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안보 논리로 확장되면서, 다자 규범의 조정 기능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 경제권도 공급망 재편과 전략산업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통상정책이 ‘경제 효율’보다 ‘경제 안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자 규범은 선언적 의미에 머무르고, 실질적 통상 질서는 지역 블록이나 양자 협정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기획-무역 FOCUS] WTO “이대로 가면 혼돈”…다자 무역체제 존립 경고

이에 WTO가 경고한 ‘혼돈’은 과장이 아니라,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피터슨 국제무역연구소의 채드 브라운 선임연구원도 "다자 무역질서의 균열은 곧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진다"면서 "교역 규범이 흔들릴수록 기업들은 투자 결정을 미루고,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WTO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지적한다. 어윈 더글러스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WTO가 기능을 상실하면 세계 무역은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며 “그 피해는 교역 의존도가 높은 중견·개도국에 더 크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무역 정책 전문가로 평가 ST.갤런대 시몬 에브넷 교수도 WTO의 기능 회복을 주문했다. 그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분쟁해결 기능 복원, 디지털 통상·보조금 규범 정비,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합의를 통해 체제 신뢰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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