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원유 비축량이 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을 상쇄할 수 있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체 재고 규모는 상당하지만 실제 시장에 즉시 방출할 수 있는 물량은 제한적이어서 국제유가 급등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원유 공급 손실이 누적 26억 배럴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1979년 이란 혁명 당시를 제외하면 누적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다.
전쟁 이전 세계 원유 수요인 하루 1억300만 배럴을 기준으로 하면 약 25일간의 전 세계 소비량이 사라진 셈이다. 최근 중국의 수요 감소로 실제 글로벌 소비량은 전쟁 이전보다 줄었지만 공급 불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람코는 걸프 지역에서 하루 1100만 배럴의 공급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은 수요 감소와 대체 공급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수급 부족분을 하루 약 500만 배럴로 보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하루 180만 배럴을 운송하던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송유관컨소시엄(CPC) 송유관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공급 부족 규모가 더 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심층-에너지 METHOD] 글로벌 비축유 15억 배럴…‘사상 최대’ 원유 공급 충격 막기엔 역부족](https://img.intrad.co.kr/resources/2026/08/14/sz32btMEN93WMYGlw6LblOX5SlQytwDEskRt2gKC.jpg)
정부 비축유만 따지면 180일 뒤 소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3월 회원국 비상 비축유 가운데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IEA 회원국이 보유한 정부 비축유와 상업용 재고는 총 15억 배럴로 추산된다. 하루 500만 배럴의 공급 부족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약 300일간 대응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상업용 재고는 정유사들이 시설 운영을 위해 보유하는 물량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IEA가 회원국의 상업용 재고 방출을 강제할 수도 없다. 실제 정책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정부 보유 비축유는 약 9억 배럴로, 현재 공급 부족분을 충당할 경우 약 180일 만에 소진될 수 있다.
IEA는 위기가 악화하면 비축유를 추가 방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지만, 일부 회원국의 재고가 이미 크게 줄어든 만큼 현실적인 동원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리스티안 에겔란드 에너지애스펙츠 연구원은 “여러 국가의 비축유가 제한적인 수준으로 줄어 추가적인 IEA 공동 방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심층-에너지 METHOD] 글로벌 비축유 15억 배럴…‘사상 최대’ 원유 공급 충격 막기엔 역부족](https://img.intrad.co.kr/resources/2026/08/14/W2d2ABMU4mL9O40eTH0ktAbjWW2IDke5v9r70ays.jpg)
미국 전략비축유, 1983년 이후 최저 수준
특히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 여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점이 부담이다. IEA 회원국 정부 비축유 가운데 약 3분의 1이 미국에 있지만, 미국의 SPR 원유 재고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3년 1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지난 5월 SPR 관련 시설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비축량의 약 25%를 현실적으로 방출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래피던에너지에 따르면 방출이 불가능한 물량은 1억 배럴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비축유가 약 2억 배럴에 그친다면 하루 500만 배럴의 글로벌 공급 부족을 메울 수 있는 기간은 40일에 불과하다.
석유제품 재고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전 세계 경유와 항공유 재고는 최근 5년 범위의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유시설이 전쟁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원유보다 경유와 항공유 공급이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마드 후세인 캐피털이코노믹스 연구원은 “재고 감소로 공급 충격에 대응할 완충 장치가 약화하면서 유가가 급등할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중국 원유 재고 최대 17억 배럴…대응 여력 ‘상대적 우위’
반면 중국은 주요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정부는 공식 비축량을 공개하지 않지만 에너지애스펙츠는 지난 7월 중국의 원유 재고를 약 17억 배럴로 추산했다. 기관별 추정치는 10억~17억 배럴로 차이가 크며, 별도로 보유한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재고 규모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실제로 17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다면 전쟁 이전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들여오던 하루 약 550만 배럴의 원유 수입량을 거의 1년간 대체할 수 있다. 일본과 함께 주요 경제국 중 가장 안정적인 비축 수준이라는 평가다.
다만 IEA가 집계하는 글로벌 재고에는 미국 SPR와 중국 비축유뿐 아니라 상업용 재고와 해상 운송 중인 원유도 포함된다. 해상 재고는 이미 판매돼 목적지로 이동하는 물량이 적지 않아 실제 공급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비축분으로 보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추가적인 생산·운송 시설이 타격을 받을 경우 비축유 방출만으로 수급 불안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원유보다 재고가 부족한 경유와 항공유 가격이 먼저 급등하면서 물류비와 항공 운임, 제조업 원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층-에너지 METHOD] 글로벌 비축유 15억 배럴…‘사상 최대’ 원유 공급 충격 막기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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